본문 바로가기

감상과 후기 사이

철학에세이 추천, 철학자와 늑대

안녕하세요.

감성을 깨우는, 조금 더 깊어지고 풍요로워지는 공간 '센티멘털 랩'입니다.

 

 

이번에 추천드릴 책은 저의 최애책입니다. 마크 롤랜즈라는 철학자가 쓴 일종의 자전적 소설(?) '철학자와 늑대' 입니다. 책 추천해달라는 친구들에게 알려줬을 때 반응도 아주 좋았고요. 평소에 철학에 대해서 아주 약간의 관심이 있으시면서, 강아지를, 또 동물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무조건 좋아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음. 지극히 사견이지만, 밀란 쿤데라를 좋아하신다면 또 무조건 좋아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있는데요. 제 머리속에서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이 책 사이에 연결고리가 생겨있어 그런 것 같습니다. 밀란 쿤데라의 '개는 원형적 시간을 살고, 사람은 직선적 시간을 산다'는 알레고리가 이 책 안에서도 유사하게 변주되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아무튼 저에게는 내러티브적인 만족감과 지적인 만족감을 모두 채울 수 있는 책입니다. 책의 주인공이자, 저자(자전적인 책입니다)가 철학교수인 터라, 철학적 개념과 용어들이 등장하면서 약간 현학적인 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 철학자가 '브레닌'이라는 매력 만점의 늑대를 키우는, 기행적이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한 삶의 순간들을 따라가는 과정은 드라마를 보듯이 흥미진진합니다. 

 

 

이번에도 역시 제 마음에 와닿은 구절 몇가지를 소개해드릴게요. 마음에 드시면 일독해보시길.

 

 

나는 길게 펼쳐진 잔디밭에 앉아 브레닌이 토끼 뒤를 몰래 쫓는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삶 속에서 감정이 아니라 토끼를 쫓아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삶에서 가장 좋은 순간, 우리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은 순간은 즐거운 동시에 몹시 즐겁지 않다. 행복은 감정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감정에 초점을 맞추면 요점을 놓칠 것이다." (221)

 

#

 

사랑에는 여러 얼굴이 있다. 사랑한다면 그 모든 것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강해져야 한다. 본질적으로 필리아는 우리가 인정하고 싶어 하는 것보다 훨씬 가혹하고 잔인하기에. 필리아의 꼭 한 가지 필요조건은 감정이 아닌 의지이리라. 동료에게 느끼는 사랑인 필리아는 그에게 무언가를 해 주려는 의지이다.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아도, 그로 인해 소름 끼치고 메스꺼워져도, 결국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대가를 치를지라도 그렇게 하려는 의지 말이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그것이 그에게 최선이자 나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경험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항상 준비해야 한다.
사랑은 때때로 아프다. 사랑 때문에 영원히 저주받을 수도 있다. 사랑은 당신을 지옥에 떨어뜨릴 것이다. 하지만 운이 좋으면, 정말 행운을 만난다면 사랑은 당신을 지옥에서 건져내 줄 것이다." (249-250)

 

#

 

내가 브레닌과 보낸 마지막 한 해 동안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늑대와 개는 인간이 통과할 수 없는 형식으로 니체의 실존 실험을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라면 '오늘도 똑같은 산책길인가? 한 번쯤 다른 곳으로 좀 가주면 안 돼? 그놈의 해번, 지긋지긋해! (...)라고 불평할 것이다. (...) 그 불평조차 끝없이 계속 될 것이다. 시간의 화살에 매료되고 혐오하기를 반복하면서, 우리 인간들은 그 혐오감으로 인해 시간의 화살에서 일탈하는 새롭고 다른 것들에서 기쁨을 찾는다. 하지만 화살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일탈을 꿈꾸게 하는 동시에 또 다른 일직선을 만든다. 그리고 우리의 행복 추구는 곧 새로이 만든 이 일직선으로부터 또 일탈하도록 부추긴다. 따라서 인간의 행복 추구는 뒤로 헛걸음질 치는 부질없는 짓이다. 결국 일직선의 끝에는 '다시는 없으리'만 존재한다." (290-291)

 

최고의 순간이란 존재의 지향점이 아니며, 삶의 누적이 아니다. 이 순간들은 세월이라는 시간 속에 흩어져 있다. 마치 여름 지중해의 따뜻한 바닷물 속에서 늑대가 물장구를 치며 만들어 내는 수면 위의 잔문결 같은 것이다.
우리는 마치 조건반사처럼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기분 좋은 감정을 느끼는 것, 즉 행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최고의 순간은 필연적으로 해탈과 같은 강렬한 환희를 경험하는 기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최고의 순간에 대한 두 번째 오해이다. 오히려 최고의 순간에는 기분 좋은 경우가 거의 없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불쾌한 순간, 혹은 우리 삶에서 가장 어두운 순간일 수도 있다. 최고의 순간은 우리가 최고의 역량을 바루히할 때이며 이는 곧 그 경지에 이르기 위해 매우 끔찍한 순간들을 감내해 낸다는 뜻이기도 하다." (321)

 

#4 

 

브레닌을 뭍던 밤, 랑그도크 지방의 살을 에는 추위와 장례식용 모닥불에서 번지던 밝은 빛의 온기. 그 안에서 인간 조건의 근원을 찾아본다. 선택이 가능하다면 누구나 희망을 주는 따스하고 너그러운 삶을 택할 것이다. 다른 편을 택한다는 것은 미친 짓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당도한다면 늑대의 냉정함으로 살아 나가야 한다. 힘들고, 차갑고, 우리를 움츠러들게 하는 삶을 살아 내야만 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바로 이 순간들이 삶을 가치있게 만든다. 결국 우리의 담대한 도전만이 우리를 구원하기 때문이다." (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