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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과 후기 사이

에세이 추천, 모든 요일의 기록

안녕하세요.

감성을 깨우는, 조금 더 깊어지고 풍요로워지는 공간 '센티멘털랩'입니다.

 

그런 기분 느껴보신 적 있으시죠.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권해주고 싶다가, 또 동시에 아무도 모르게 혼자만 알고 싶기도 한 기분. 정말 맛있는 음식을 파는 식당, 분위기가 무지 좋은 카페, 그리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책. 이번에 리뷰를 남겨두려는 '모든 요일의 기록'은 바로 그런 기분이 들게 하는, 제가 제일 아끼는 에세이입니다.

 

 

 

그녀가 쓴 모든 책들이 저의 취향을 저격합니다만, 그 중에서도 2015년 10월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그 강렬한 느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의 느낌이 책 첫장에 짧게 남아있습니다. 오글거려 첨부는 못하겠습니다만..;) 에세이의 매력은 한 사람이 살아온 삶의 방식이나 내밀한 생각들이 고스란히 문장에 담겨 있다는 점일텐데요. 그녀의 과거와 현재의 삶과 시각(직접 찍은 사진들도 수록되어 있습니다.)은 그 자체로 매력적입니다. 심지어는 '박웅현'이라는 무기가 그녀의 일상을 함께하는 선배로 등장하는데 당해낼 재간이 있겠습니까.

 

 

책표지, 제목 아래에 실린 "날카로운 아이디어는 뭉툭한 일상에서 나온다"라는 문장에서부터 느낌이 오지 않나요. 솔직하고 담백하면서도 그녀의 색깔이 가득 가득 담긴, 제가 빠져들 수 밖에 없었던 그녀의 문장들을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책 곳곳에 밑줄이 그여있어, 고르고 고른 몇 문장들을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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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셰익스피어를 읽었다, 라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셰익스피어에 대해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가? 아무것도 없다.  읽었다는 사실만 기억한다. 그건 읽은 것일까? 마흔이 넘어 내게도 셰익스피어의 시간이 올까? 간절히 오기를 바랄 뿐이다. 어디 셰익스피어 뿐이겠는가? 내 책장에는 언젠가 내가 새롭게 발견해주길 기다리는 책들로 가득하다. 도스토옙스키도, 톨스토이도, 카뮈도, 그 밖의 수많은 작가들도 모두 숨죽여 기다리고 있다. 이미 거쳐 간 책들도 모두 자신의 시간을 숨죽여 다시 기다리고 있다. 그 책의 시간은 언제일까. 알 수 없다. 다만 사람과 책의 관계에도 때와 환경과 감정의 궁합이 맞는 순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32)


"내가 이해할 수 없어도, 내가 껴안을 순 없어도, 각자에겐 각자의 삶이 있는 법이다." (51)


"아직도 회사 책상 앞에는 파리 지도가 붙어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위에 종이 한 장이 더 붙어 있다. 파리로 붕붕 떠다니는 내 마음을 알고, 어느 날 박웅현 팀장님이 나에게 써주신 글귀다. 이제는 반성문 대신 이 글귀를 읽는다. 서른여섯 살에도 마음은 시도 때도 없이 붕붕 떠다니니까." 

 

    봄이 어디 있는지 짚신이 닳도록 돌아다녔건만,

    돌아와보니 봄은 우리 집 매화나무 가지에 걸려 있었다.

                                                            - 중국의 시 " (76)


"분명 프랑스를, 지중해를 알기 위해 책을 펼쳤었다. 그렇다. 나는 물리적인 공간으로서의 지중해를 만나고 싶었다. 태양과 구릿빛 피부와 풍부한 해산물과 지금 행복한 사람들의 공간을 꿈꾸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결국 도착한 곳은 정신의 지중해였다. 내일의 태양을 기대하지 않는 것. 지금의 이 태양을 남김없이 사는 것." (86)


"젠장, 지금 이곳이 지중해였다." (89)


"물론 육체의 지중해는 지금도 여전히 나를 유혹한다. 끊임없이 그곳으로 오라 손짓한다. 반면에 정신의 지중해는 나를 지금 이곳에 살게 한다. 내 마음가짐에 따라 이곳이 지중해가 될 수 있음을 알게 한다. 바람이 불고, 달이 뜨고, 낙엽이 지고, 겨울이 오고, 다시 봄이 오고, 그 모든 아름다움이 지금 여기에 있다.

 

    지금, 여기가, 나의 지중해다."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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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나 사이에 생긴 결정적 순간은 평생 그 음악에 달라붙는다. 떨어지지 않는다. 더 강렬한 경험이 와도 처음의 그 경험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하여 음악은 내게 실용이다. 책보다도, 그림보다도, 사진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일을 하게 하고, 집중을 하게 하고, 여행을 하게 하고, 술맛을 돋우고, 기분을 바꿔놓고, 마음을 간지럽히고, 흐린 날에 햇살을 드리우고, 햇살이 가득한 날에 비가 오게 하고, 해를 더 반짝이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도, 맞다, 이 글을 쓰게 했다. 음악이." (119)


"다만, 여행할 때 우리의 귀는 다른 식으로 열린다는 이야기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평소라면 지나쳐버렸을 어떤 음악이 평생 간직하고 싶은 행운으로 느껴지고, 평소라면 발걸음을 재촉했을 연주자 앞에서 기꺼이 눈물을 흘려버린다. MP3 플레이어에서 우연히 흘러나온 음악 덕분에 눈앞 풍경이 더 아름답게 보이고, 지금 이 음악고 함께 이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여행은 감각을 왜곡한다. 귀뿐만 아니라 눈과 입과 모든 감각을 왜곡한다. 그리고 우리는 기꺼이 그 왜곡에 열광한다."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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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알파마에도 재건축의 바람이 불었다고 한다. 알파마 지구는 리스본의 달동네니까. 가난하고 범죄율이 높은 동네를 깔끔한 새 동네로 만들고자 하는 열망. 그렇게만 된다면 모든 삶의 주름들이 제거될 것이라는 기대. 관광객은 늘어나고, 범죄율은 낮아지고, 주민들의 삶은 좋아질 것이라는 망상. 온 지구를 개발의 논리 아래 줄 세우는 그 헛된 망상 앞에서 누군가가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주름을 없애는 수술을 하는 대신, 이 주름에 이야기를 덧붙이자고. 그때부터 알파마 지구에는 수식어가 붙이 시작했다. '리스본 대지진에서 살아남아 리스본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라는 수식어가." (170)


"하지만 그런 걸 꿈이라 불러도 되나. 그건 그저 욕망이라 불러야 하는 것 아닐까. 혼란스러웠다. 그러다 나는 늙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10대엔 10대라 힘들었고, 20대엔 20대라 너무 힘들었다. 왜 이렇게 시간은 무정형이지. 왜 이렇게 나는 휘청일까. 사소한 상처 따위는 신경도 안 쓰는 나이가 분명 있을 텐데. 울음이 멈추는 나이가 나에게도 분명 올 텐데. 그건 또 언제인가. 60이 되면 괜찮을 것만 같았다. 고요한 시간이 드디어 내게도 찾아올 것 같았다. 어떤 자극이 찾아와도 무심하게 고요하게.

60이 되고 싶었다. 그게 꿈이었다." (181)


"나이라는 건

저절로 도착하는 

정거장 같은 건데

나는 자꾸

빠른 열차를 타고 싶었다.

빠른 열차로

60이라는 나이에

도착해버리고 싶었다.

바람에 나부끼는 마음을 뒤로하고,

정처 없이 상처받는 시간을 모른 척 하고.

더 이상은 그런 꿈을 꾸지 않는다.

대신 해마다 도착하는

그 나이의 색깔을 기다린다.

모두가 지니고 있는

바로 지금의 색깔에 열광한다.

 

여리고 미숙하거나

닳고 바래거나

모든 나이에는

그 나름의 색깔이 있다.

다시 오지 않을 색깔이 있다." (184)


"물론 이제는 안다. 내가 어릴적 꿈꾸었던 그런 말짱한 나이는 없다는 걸. 60이 되어도 내가 꿈꾸는 것처럼 무심하게 고요할 리 없다는 걸. 오늘은 여기가 아파 우울할 것이고, 내일은 저기가 골칫거리일 것이다. 내가 괜찮은 어떤 날에는 남편이 말썽일 것이다. 그때 내게 일거리가 있다면 그 일이 하기 싫어 몸부림일 것이고, 그때 내가 백수라면 앞으로 남은 세월 동안의 가계가 걱정일 것이다. 돈이 있더라도 몸이 안 따라 줄 수도 있다. 장기하의 노래처럼 '별일 없이 산다'라는 친구의 말이 제일 부러운 말이 될 수도 있다. 별일이 없다니. 난 아직도 순간순간이 별일이라 미치겠구먼. 어쩌면 루르마랭의 그 할아버지도 네덜란드에서의 생활이 지긋지긋해 혼자서 여행을 온 걸지도 모른다. 나름의 방법으로 도피중이었을지도 모른다. 결국은 아무도 모를 일이다. 할아버지의 60은 무슨 색깔이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젊음의 형광빛보다는 늙음의 희미한 빛에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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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인생을 잘 살 수밖에 없는 기본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다. 그 기본기를 키우기 위해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사진을 찍고, 여행을 다니고, 뭔가 끊임없이 하고 있다. 그렇게 비옥하게 가꿔진 토양이 있어야 회사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도 내고, 새로운 카피도 쓰고, 새로운 뭔가도 시도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무엇보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내가 비옥한 토양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여기에서 어떤 나무가 자라날지는 모르겠지만 그 나무가 튼튼했으면,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 그렇게 열심히 토양을 가꿨는데도 아무 나무도 안 자란다면? 그 역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내게 비옥한 토양은 남을 테니까. 그 토양을 가꾸는 과정에서 나는 충분히 행복할 테니까. 그 토양을 가지고 있다면 도대체 행복하지 않을 도리가 없으니까." (200)


"흙을 만지며 생각했다. 선생님 말이 맞았다. 선생님은 1년 넘게 나에게 계속 같은 말을 했다. 흙을 손 전체로 감싸세요. 구멍을 뚫을 때 중심이 안 흔들리게 조심하세요. 밑에서 흙을 천천히 가지고 올라와야 해요. 이제 속도를 좀 늦추세요. 계속 같은 말을 했고, 나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몰랐다.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밭을 만드는 데 1년이 걸린 것이다. 이제 겨우 밭을 갈았고, 이제 겨우 씨앗을 뿌린 거다. 아니 그 전에 손 작업을 한 시간까지 합치면 거의 4년이 걸린 셈이다. 대학교를 졸업할 시간 동안 이제 겨우 중심 잡는 법을 몸이 익힌 것이다." (219)


"지쳐도 계속했으니까 그 순간의 단맛을 볼 수 있었던 거다. 이게 뭐가 될까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뭐가 될 거라고 기대를 했다면, 꿈에 부풀었다면, 내 손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재능 없음에 한탄했을 것이다. 쉽사리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재능 없음에 한탄했을 것이다. 쉽사리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으니까, 계속했으니까, 몸에게 시간을 줬으니까. 그래서 결국은 머리의 말을 몸이 알아들은 거니까, 계속하는 거다. 묵묵히. 계속 가보는 거다. 마치 인생의 잠언 한 줄을 얻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중심 잡는 법을 터득한 후에는 어떻게 되었냐고?

그 사실에 너무 흥분을 해서 그 뒤에 그릇을 세 개 연속으로 망가뜨렸다."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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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나는 일기장을 꺼냈다.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쓰기 시작했다. 32년간의 감정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그 감정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살아왔지만 결코 아무렇지도 않을 수 없었던 그 감정에 대해. 썼다. 쓰고 또 썼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을 썼다. '아빠가 돌아가셨다'라고. 그제야 나는 나에게 닥친 그 사태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제야 나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말했다.

아빠가 돌아가셨다고. 이제야 모든 것이 끝났다고." (259)


 "타고난 문장가도 아니면서, 그럴듯한 시나 소설이나 에세이를 쓰는 것도 아니면서 나는 쓴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쓴다. 아무도 못 보는 곳에도 쓰고, 모두가 보는 곳에도 쓴다. 쓰고서야 이해한다. 방금 흘린 눈물이 무엇이었는지, 방금 느낀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왜 분노했는지, 왜 힘들었는지, 왜 그때 그 사람은 그랬는지, 왜 그때 나는 그랬는지. 쓰고 나서야 희뿌연 사태는 또렷해진다. 그제야 그 모든 것들을 막연하게나마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쓰지 않을래야 쓰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260)


"그러니 쓴다는 것은 내가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방식 중 하나이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261)


"지금의 나는 이전의 나와 많이 달라져버린 것 같았다. 확실히 생각은 단순해졌다. 감정도 직선으로 흐를 때가 많았다. 한 발 빼고 남의 이야기로 흘려버리는 때가 많았다. 나는 괜찮으니까, 라고 이기적으로 판단하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날들이 많았다. 감정의 끝이 많이 뭉툭해졌다. 문장 하나에 열광하는 일은 더 잦아졌지만, 문장 하나에 아파하고 끝없이 생각하고 우울해하고 결국 일기장을 꺼내는 일은 사라져버렸다. 속은 텅 비어갔지만, 사는 게 괜찮았으므로 나는 괜찮았다. 심각한 생각은 쓸데없는 구덩이를 파는 것처럼 느껴졌다. 가볍게, 초대한 가볍게, 그냥 흘려보냈다. 시간도 자각도.

그러다 보니 나는 대충 괜찮아졌고, 그런 일들이 반복이 되자, 더 이상 괜찮지 않았다. 물론 하루라도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그저 버티는 건 정말 사는 걸까'라는 노래 가사 한 줄을 며칠 동안 곱씹던 20대는 지금 내겐 너무 버거웠다. 누구의 20대가 안 그렇겠냐만은. 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 욕심이었다. 20대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으면서 20대의 나를, 그때의 글쓰기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 불안했다. 입구만 있고 출구는 없는 불안함이었다." (274)


"생각을 그만둔 동안 나의 다른 부분이 성장했다는, 품이 넓어졌다는, 혹은 세상의 다른 면도 알게 되었다는 증거처럼 여겨졌다. 어쩌면 나는 생각을 그만두지 않았었다는 확신에까지 이르렀다."

 


위의 문장들에 마음이 홀리신다면? 발췌한 일부로는 대체할 수 없는, 책 전체를 일독해보시길.